표면으로만 이루어진, 닿을 수 없는 거리(distance)의 이미지를 위한 지지체
–정현
2020년 5월 현재 코로나19는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바꾸어 버렸다. 미술 전시 또한 그러했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발발로 확진자 폭증 사태를 맞이한 2월 말 국공립 미술관은 잠정 휴관에 돌입했고, 작은 전시장 역시 전시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기 시작했다. 예술 관계자들의 비관적 예측이 예술계에 팽배한 가운데 Hauser & Wirth는 일찌감치 VR(Virtual Reality) 투어를 시작했고, SWAB 아트 페어는 미로 같은 가상 전시장의 벽을 따라 돌다가 원하는 작품을 클릭하여 구매하는 디지털 투어 데모 영상을 공개했다.
황원해의 개인전 《제4의 벽》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을 때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예견하는 가상 전시 예고가 등장하기 직전 조심스럽게 오픈했다.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 대응 지침에 따른 준비를 마친 전시장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관람객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소독제로 손을 닦고 인적 사항을 적은 뒤 입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렇듯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위한 전시 인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SNS상의 전시 인증 사진은 전시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거나 전시 마케팅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전시 기록물로 여겨진다. 관람자가 찍은 전시 인증 사진은 작가의 전시 계획 이미지, 사진작가가 촬영한 전시 작품 사진 등과 어우러져 그 이미지를 보는 이의 감각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상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는 흥미롭게도 황원해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이 뒤섞인 도시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으로 전환하기 위해 건축가나 도시 계획가의 스케치, 사진, 지도 앱의 거리 뷰 등 여러 가지 시각 자료를 총동원한다. “포토샵으로 사진의 부분을 오려 내고 이들을 조합해 에스키스를 시도한 뒤 이를 다시 촬영한다. 이 과정의 반복을 통해 작업의 기반을 마련한다.” 포스트 프로세스를 위해 선택된 이미지들 중 그 어느 것도 작가의 체험을 오롯이 재현해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러 개인들의 시선으로 포착된 이미지들은 3차원 공간의 좌표에 맞추어 엮어지며 작가가 본 도시의 순간을 재생한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순간 캔버스뿐만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공간의 표면 전체가 하나의 양식(template)처럼 사용되었다는 것을 곧장 알 수 있다. 황원해는 ‘공간 형’의 길고 좁은 공간을 모두 그림으로 덮었다. 물감, 캔버스, 시트지 등 다양한 매체에 실린 높고 낮은 해상도가 관람자로 하여금 도시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인증 숏 또한 파편적 기록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런 과정은 작가에게도 전시를 만드는 순간부터 이후까지 반복되는 체험이다. 그가 캐비닛 드로잉(cabinet drawing)으로 표현한 전시 계획도는 전시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시점으로 압축된 도안으로서, 시공자의 작업 수행을 돕는 프로그램 언어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사진작가 신지혜가 포착한 전시 전경 이미지 17장과 사진작가 고정균이 포착한 작품 상세 이미지 28장은 황원해의 도면에 따라 구축된 물리적 좌표를 고해상도로 렌더링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부분의 진실을 포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모든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이것은 전시 리뷰를 쓰는 나의 경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전시 리뷰를 쓰기 위해 전시장을 단 한 차례만 방문한 채 전시 계획 도면, 관람자의 인증 숏, 사진작가의 촬영 이미지 등을 오랜 시간 겹쳐 보며 전시 분석에 골몰했다. 모든 이미지는 파편화되어 있어 나의 전시 체험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내 경험 위에 타인이 생성한 이미지들이 섞이고 그것으로부터 해석을 추출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나 관람객이 전시에서 느꼈을 법한 감각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유사 체험(a pseudo experience)을 격리된 시공간 때문에 생긴 일시적 해프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전시가 화면 속 이미지로, 전시 체험이 화면 속 이미지 감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처럼 보인다.
VR 전시장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훗날의 전시장은 디바이스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가상의 무대 세트가 될 것이다. 관람자가 아바타를 이용해 전시를 즐기며 인증 숏을 찍는 FPS(First-Person Shooter) 게임 플레이와 같은 행위를 전시 관람이라고 부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유사 체험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뮤직비디오나 영화 시청 등의 간접적 체험은 물론 먹기, 농사짓기, 반려동물 양육 같은 직접적 체험마저 누군가가 대신해 즐겨 주는 것을 마냥 바라만 볼 수 있도록 한 영상들이 인터넷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4의 벽》은 닿을 수 없는 대상과 그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경험 사이의 거리를 상징한다. 황원해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미지를 모아 만든 패턴으로 그가 바라본 도시를 재구축하는데, 그것은 캔버스부터 공간까지 모두를 포괄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미술 전시라는 특성상 닿을 수 없는 작품을 두고 작가가 도시를 두고 느꼈던 감각과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어서 그들이 촬영한 전시 인증 숏은 또다시 파편화된 이미지가 되며 황원해의 전시 공간을 회상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 끊임없는 재귀적(recursive) 시스템은 바로 작가가 그리는 도시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황원해의 작품이 도시와 건축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비평적 예술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그는 깊숙이 파고들기보다 과감히 표층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을 흐르는 시선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그의 이미지는 캔버스를 넘어 구조체의 표면까지 잠식하며 엄밀하게 구축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면으로만 이루어진, 닿을 수 없는 거리(distance)의 이미지를 위한 지지체로 서 있다.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