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Phantasmagoria–최정윤
작가 황원해는 도시의 풍경, 그 중에서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 내의 다양한 건축물에서 영향을 받은 회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의 작업에는 궁이나 사찰, 한옥과 같은 한국의 전통 양식의 건축 요소와 마천루(skyscraper)에서 발견하게 되는 현대적 건축 요소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질적인 요소들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비일상적 풍경을 만들며 다이내믹하게 공존한다. 작가는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의 틈을 넘나들며, 도시 개발 이면에 남겨진 잔해들을 재조합해 초현실적 풍경을 만든다.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열 번 정도 이사를 다니며 반지하 빌라, 아파트, 개인주택, 상가주택, 빌라, 사택 등 다양한 공간에 거주”했던 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간의 힘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이다. 판타스마고리아는 ‘환영’이라는 뜻의 ‘판타스마(phantasma)’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뜻은 18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발명된 환등기의 투사이미지, 환등상이다. 환등기는 나무통에 검은 천과 삼각대로 구성되어 있고, 뒤편에는 조명이, 그 앞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움직여 렌즈 앞으로 다양한 환영이 나오게 하는 장치다. 다시 말해, 판타스마고리아는 실제 현실과는 무관한 비현실적인 것, 환영적인 것을 뜻한다.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도시와 상품세계, 이러한 것의 체험 전반을 규정하는 용어로 판타스마고리아를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이번 전시에서 황원해는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이라는 맥락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제목을 붙였다.
사실상 모든 공간은 인간이나, 기억 등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고, 고장이 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대상도 노화(aging)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도시 내에서 이루어지는 재건축과 재개발이 어떤 집단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이뤄지는 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장밋빛 미래로 제시된 ‘판타스마고리아’ 이면에는 자본과 권력의 공모 하에 기억이나 전통의 보존의 중요성이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황원해는 이번 전시에서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여러 층위의 시간이 다충적 레이어를 구성하는 양태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는 평면 작업이 대부분이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전시 공간 자체를 캔버스로 상정하고 공간의 그리드와 단청문양을 입체로 구현하거나, 페트 필름을 활용해 여러 층위의 레이어를 구분하여 설치해 각 레이어를 개별적으로도 또 종합적으로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 셰이프드 캔버스를 활용한 작업은 전시공간의 벽과 어우러져 작품과 공간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중첩시킨다.
전시가 열리는 보안여관은 오래된 적산가옥(敵産家屋) 중 하나이다. 지난 7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은 서양식 외양을 갖고 있지만, 내부에는 일본식 창과 천장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적국의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국민의 미움을 받아왔지만,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안여관은 황원해의 작업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장소 특정적 회화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서로 다른 문화적 유산이 혼재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안여관과 황원해의 작업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한다.